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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서동요 원본 역사와 해석 분석 <1편>

북리뷰

by 연우23 2023. 3. 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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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요는 백제 서동(백제 무왕의 아명)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민요 형식의 노래이다. 향찰로 표기된 원문과 함께 그 설화가 ‘삼국유사’ 권2 기이편 무왕조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서동요는 현전하는 향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노래로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이에 서동요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삼국유사와 향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2. 삼국유사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의 보각국사 일연(一然: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에서 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사적을 모아서 지은 역사서이다.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 진 야사이나,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에 관한 서술은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는 단군을 국조(國祖)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는 기록이다. 그 밖에도 많은 전설·신화가 수록된 설화문학서라고도 일컬을 만하며, 특히 향찰로 표기된 ‘혜성가’ 등 14수의 신라 향가가 실려 있어 ‘균여전’에 수록된 11수와 함께 현재까지 전하는 향가의 전부를 이루고 있어 한국 고대 문학사의 실증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2.1 삼국유사 편찬 배경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무신란 이후의 혼란한 고려사회에 대한 자각과 반성에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찾기 위해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려는 시도를 통해 삼국유사를 편찬하고자 했다. 또한 당시 몽고의 간섭을 받던 고려 정치 상황의 모순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이는 민족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외부의 압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연의 역사의식 속에서 삼국유사가 편찬된 것이다. 

3. 향가

 향가는 우리말로 된 최초의 기록문학이고, 또한 개인 창작시라고 할 수 있다. 민요에서 유래한 것도 있지만, 기록되어 정착되자 향가에 편입되었으며 언제 누가 창작했다는 설명이 달려 있어서 개인 창작시인 것처럼 보인다. 또한 향가는 불교의식 가용 및 한시와 구별되는 특정 기능은 없는 우리말 노래이면서 향찰로 표기되고, 사설이 아주 중요시되고 개인작으로 인정되는 서정시이다. 향가라는 명칭의 ‘향’은 ‘우리 것’이라는 정도의 뜻이며, 현재 25수가 전해지고 있다. 서동요는 향가의 형식 중 가장 짧은 4구체로 민요적 계열의 노래이고, 또한 참요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3.1 향찰 체계 

 향가 표기를 위한 향찰은 한자를 이용해서 우리말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향찰의 기본 원리는 뜻을 새겨서 훈독해야 할 글자를 앞세우고, 음독해서 발음을 알아 볼 수 있는 글자를 그 뒤에다 붙이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음운 체계가 복잡한 우리말을 한자로 적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만족스러울 수 없기 때문에, 향찰표기법은 고려 후기가지 명맥은 유지 했지만 널리 쓰이지 않았으며, 향찰의 개량이 아닌 훈민정음의 창제에 의해서 우리말을 전면적으로 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동요 분석2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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