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가 상징주의 문학에 끼친 영향을 논하기에 앞서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 낭만주의 시대에 있어서 ‘상응’개념의 우성화에도 불구하고 왜 보들레르의 산문시집 <악의 꽃>에 수록된 ‘상응’이라는 조그만 소네트가 후의 시인들 특히 상징주의 시인들에 의해 상징주의의 초석이며 원천이라고 간주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낭만주의의 대부 빅토르 위고나 발자크, 셍트 뵈브, 호프만 등은 ‘상응’ 개념의 창시자라 볼 수 있는 스웨덴보그의 열렬한 제자들이었고 그 한 예증으로 발자크는 그의 <절대로의 추구>에서 “스웨덴보그는 나의 종교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아울러 보들레르의 연구에서도 그의 소네트 ‘상응’의 원천을 스웨던보그, 즉 낭만주의의 일종의 수호성인의 영향으로 간주해 왔던 것이 통례이다.
보들레르가 상징주의 운동의 원조였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르나 그의 영향은 스웨덴 보그의 용어, 이른바 ‘상응’의 기용-조금만 소네트와 낭만주의 시인들 또는 바그너의 비평문 등에 반복해서 나타나 있는 -보다 더 큰 무엇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보들레르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사실 그의 다양성, 가변성, 돌출하는 요소의 결여, 나아가 특징의 전치성과 복수성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들레르의 ‘상응’의 개념은 낭만주의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

2. 보들레르와 상징주의 문학
상징주의 문학비평의 선구자인 안나 발라키안은 보들레르를 가리켜 그는 상징주의자는 아니나 상징주의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단언한다. 발라키안은 그의 기여를 구체적으로 1. 시인의 기능, 2. 시형식의 개념, 3. 상징주의 원형의 결정에 있고 지적한다. 그의 행도에서도 점철되오 나타나고 있는 시인의 기능 또는 예술가의 기능에 있어서 보들레르는 시인의 낭만주의적 개념을 수정하고 있다. 그는 낭만주의 시인들의 전형적 특징이라 볼 수 있는 탄창시인적 요소, 이른바 ‘인간적 감정’을 최고의 선으로 번안하고 찬양하는 요소를 수정해 시는 잠정적 활동이 아니라 지적 활동의 소산이며, 따라서 시인은 현자나 견자의 상격으로 가정한다.
시인은 보들레르에 의하면 감각과 지각의 최상의 능력을 가지고 생의 신비 또는 수수께끼를 부여라거나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해독’한다. 전달이 특수성의 보편화라 정의한다면 ‘해독’이라 함은 보편적 문제와 그의 신비들에 개별적인 실체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보쳔적 진싱성의 개인화, 갸별화는 가끔 족자에게 선명함보다는 모호함과 신비에 빠져들게 한다. 유사한 이유로 보들레르는 그의 비평논서들에서 다른 예술가들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덕목들을 추출해내고자 한다. 보들레르에게 낭만주의자들이 찬양했던 ‘이국적’ 취향은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국적’이라는 말은 세계주의(즉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모순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에게 중요했던 것은 현실을 사는 인간 상황이었고 그 인간상황이 그에게는 유일한 시적 차원(이었다. 바로 이러한 시인의 개념이 보들레를 낭만주의 시인으로 볼 수 없는 점이며 또 그가 상징주의자들에게 넘겨준 요소이기도 하다. 기슬 상징주의자들은 가장 비국가주의적 그룹이었는데 그들이 당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요새였던 파리에 운집했기 때문뿐 아니라 보편적인 무드와 비국부화한 도시풍경에 대한 그들의 공통된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보들레르의 세계주의로 행한 집착은 그의 역사관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가령 그는 바그너론에서 역사와 전설간의 경계를 확실히 구명하고 있다. 그의 정의는 낭만주의의 거장이며 보들레르 자신이 찬탄해 마지않았던 빅토르 위고의 전설에 대한 개념과 상반된다. 위고에세는 전설이란 단순히 시화한 역사였는데 반해 보들레르가 바그너에게서 발견하고 깊이 공감했던 전설의 개념은 역사적 사실들을 거역하며 때로는 전복도 서슴지 않는 새로운 일련의 사건들의 창조며 따라서 상이한 수많은 역사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자’가 된다. 시인은 과거의 사실들에 활기와 생명의 혼을 불어넣어 주는 단순히 생생한 역사가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초원한 영원성을 다루는 그래서 모든 소재들의 가장 ‘세계적’인 것을 다루는 반역사가이다. 보들레르에 의하면 시인은 역사를 재구성하기보다는 역사를 변형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오늘날 프랑스 시가 각기 다른 모든 언어로 쓰여진 시들 중에서 인종적인 전통과 또 시가 탄생하고 영향을 섭취한 토양의 성격과 가장 무관한 특징을 갖는 시가 되게 한 분기점, 그러한 방향의 전환인 바로 보들레르에게서 시작되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아울러 상징주의 학파를 특징짓는 요소가 된다.
둘째로 보들레르가 상징주의 문학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상징주의 시 형식의 개념의 설정이다. 상장주의 문학형식의 특징은 간접화법의 기용이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로서 우선 직접화법과 ‘나’를 배제하고, 의미를 형상들을 통해 전달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간접화법의 요소로서는 단어들의 환기력에 의존하는 방법으로서 단어들 자체가 형상의 힘을 환기시키는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특히 그의 산문체 형식의 비평문들과 인간의 감수성에 대한 약물의 효과에 관한 묘사들에서 시의 간접적인 화술에 가장 근접하고 있다. 그는 이들에서 시 자체가 하나의 신비,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부연해 개개의 단어들과 대상들에 포함된 복수적인 의미들이 시의 신비와 부드의 구성원들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해의 승리감, 만족감이 존재하지 않으며 메시지는 그것이 분명한 만큼 모호하게 남아 있다.

끝으로 공감각 자체도 보들레르의 간접화법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공감각이란 시인에게 있어 단순히 지각과 감각들의 혼합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바그너에 대한 수필에서 보들레르는 예술 형식들간의 혼합의 개념을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감각 촉매들의 보다 넓은 공감각적 혼합의 가능성의 차원을 제시하고 있다. 공감각의 개념과 더불어 보들레르는 음악의 힘이 단일한 감각의 자극을 통해 형상의 복수족인 감각적 차원을 발기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그는 만일 음악이 형상의 단일한 차원 이상을 암시할 수 있다면 단어들도 구조된 음과 꼭같은 기능을 가정할 수 있고 그래서 시는 감각의 묘사 이상으로 감각 그 자체를 창조할 수 있으며 ‘무드’라 불리는 감각들의 복합성을 시가 암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전달의 융통성을 통해 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에 가까운 예술형식이 될 수 있었으며 그러한 형식의 창안에 보들레르의 기여는 실로 결정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마지막 셋째로 보들레르가 상장주의 끼친 영향은 '데카탕'의 원형의 형성에 있다. 그말, 그 단어 자체에 관해 보들레르 자신은 언급한 적이 없으나 아마도 보들레르는 '데카탕'타입을 의도적으로 '살기' 시작한 '마지막'인문이었던 듯하다. 사실 보들레르 자신은 그 자신을 '데카탕'으로서보다는 '댄디(멋장이)'로 여겼다. 플로베르의 『성 앙투안느의 유혹』에 잘 묘사된 댄디는 19세기 중반기의 이미지로서, 게으르고 이기적인 남자로서 중년에 접어들었으나 기록할 만한 실제의 업적은 하나도 없는 채 감정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기회주의자이며 약간 기괴하나 멋있게 차려입고 권태에 지친, 모든 관념들과 경험들을 전부 실험하고 그것들을 무의마한 공백의 공허감으로 감축한 다음 지루해서 못 견디는 그러한 인물이다. 표면상으로 보들레르는 플로베르가 묘사한 댄디에 잘 맞아 떨어지나 그 이상의 무엇이 보들레르에게는 있는데 그것이 후에 '데카탕'이라고 부르게 된, 그러나 우리가 흔히 그 이미지에 결부시키는 퇴폐한 도덕적 성격보다는 미학적, 철학적 정의에 준하는 데카탕의 원형의 그것이다.
이상과 같이 보들레르는 상징주의 문학의 1. 시인의 개념 2. 시형식의 개념 3. 상징주의 원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데카탕’의 정신과 그에 동반되는 ‘심연’, ‘고뇌’와 같은 요소들을 그의 문예비평문들에서 또는 그의 내밀일기에서 암시해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상징주의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징주의의 기초개념과 형식의 틀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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