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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줄거리 및 감상문

북리뷰

by 연우23 2023. 1. 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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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처음 시작부터 그녀의 의식세계는 어린시절을 보냈던 부르톤과 현재의 런던 사이를 오간다. 부르톤은 인간이 죄로 인해 잃어버렸다는 에덴과 같은 정원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를 세워 세계를 개혁하려 했던 부르톤의 젊고 순수한 틀라리사와 지금 영국지도층의 속물적인 면모를 보이는 댈러웨이 부인은 뚜렷히 대비된다. 부르톤에는 그녀
의 친구 샐리가 있었으며 그 순간을 마치 "단지 간직하기만 하고 바라보지도 말라고 엄명된 싸여진 선물-다이아몬드, 무한히 소중한 싸여진 어떤 것,.. 계시, 성스러운 느낌"처럼 그녀는 느낀다. 부르톤은 인간간의 분리나 영원한 고립인 죽음이 문제되지 않는 완전함, 연속성, 합일성의 상징인 에덴동상이다. 반면에 현재의 그녀는 생활의 연속적 리듬이 중단될까봐 두려
워한다. 6월의 화사한 여름 아침, 모든 생명의 약공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을 궁극적으로 중간시킬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그냐는 "무엇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려 한다"고 걱정한다. 월리엄 셰익스피어의 심버인에서 이모겐의 죽음을 애도하는 "태양의 열기를 더이상 두려워 말라"라는 어귀가 작품 전반을 통하여 되풀이 된다.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댈러웨이 부인은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그녀가 되찾으려 한 것은 무엇인가? 펼쳐 있는 책에서 그녀가 읽었듯이 시골의 하얀 새벽의 어떤 이미지" 그러나 그것이 에덴동산이건, 혹은 실제의 부르톤이건 간에, "세월의 흐름이 그 옛날 오월의 투명함을 흐려버렸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는다. 이런 타락한 상태에서 클라리사 "무엇인가 중심이 되는것"는 인간간의 연속성, 혹은 합일감을 이루는 능력이 부족함을 한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명백한 자각에도 불구하고 "어떤 갑작스런 계시가, 호오와도 같은 티"가 갑자기 번져나가 그녀는 가끔 이런 화합의 순간을 한순간이나마 감지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녀가 자진의 과거와 현재속의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파티는 명백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녀의 파티는 거로 분리되어 있는 인간 조재들은 조화롭게 엮어 그녀의 이상인 연속성, 합일성을 창조해 낸다. 그녀는 파티를 통해 돌아갈 수 없는 에덴을 잠정적이나마 창조하는 것이다. 그 파티에는 부르톤시절의 친구인 피터와 샐리는 물론이고 그녀가 싫어하는 킬만양 조차도 참석하여 화합의 장을 이룬다.비록 에덴을 회복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에덴 혹은 부르톤에 대한 향수는 자유인본주의의 이상으로 해석되어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는 일어버린 유토피아적 인간공동체로서 작품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1923년 작품을 구상항 당시, 울프는 6월 19일자 일지에서 '댈러웨이 부인'(당시의 제목은 '시간들')을 통하여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에 관해 쓰고 싶고, 그리고 사회체제를 비판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원해의 의도대로 울프는 셉티머스와 댈러웨이 부인을 통하여 삶과 죽음,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비젼을 나란히 제시했으며, 또 그들을 통해 사회 비평을 하고 있다.
작품의 구성상 델러웨이 부인의 이야기와 셉티머스의 이야기는 별 상관업이 진행된다. 작품의 끝부분에서 브래드쇼 부부가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에 도착하여 셉티머스의 죽음을 전하므로써,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는 유일하게 관계지워진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인간의 잃어버린 낙원은 중요한 주제이다. 댈러웨이 부인의 상념 속에서 경첩의 삐꺽하는 소리가 과거의 부르톤과 현재 런던의 아름다운 아침을 매듭 하나 없이 이어주듯이, 댈러웨이 부인은 그녀의 삶속에서 낙원이 약속하는 연속성을 원한다. 그러나 작품에서 연속의 문제는 과저의 부르톤에서는 연속이 가능했는데 현재의 삶은 파편적이다. 혹
은 클라리사는 순수했는데 댈러웨이 부인은 타락했다가 아니다. 부르톤에서도 중단자인 피터는 있으며, 작품에서 낙원의 문제는 단순한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의 문제로 통속화되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댈러웨이 부인은 파티라는 유토피아적 인간공통체를 통하여 잃어버린 낙원을 이 땅위에 가져오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셉티머스에 대한 강한 공감이 드러내듯이, 개인이 사회로부터, 남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신내부의 연속성인 사사로움과 족립성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낙원의 척도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그녀와 셉티머스는 강한 유사성을 드러낸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날밤 수상이 참석하는 파티를 여는 안주인으로써의 모든 공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사사소움의 필요성, 자아의 독립성을 요구한다. 그녀는 앞 집의 나이든 숙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녀를 통해 상징되는 독립성과 의연함을 자신의 미덕으로 삼는다. 그녀는 남편 리차드와의 결혼의 이유로 피터와는 달리 부부사이 일지라도 각각의 독립성을 갖는 것이 무언인가를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매일 생활에서 그녀는 자신의 영혼의 자유와 독립성을 침해하는 여러 종류의 방해자들을 만나낟. 그녀를 속물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소중한 엘리자베이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광신적인 킬만양이 있다. 그녀를 제외하고 그녀의 남편만 초대하여 상처를 주는 부르톤 부인도 있다. 현재의 파티가 있는 아침에도 피터는 예상치않게 돌아와 그녀의 고요한 사람의 리듬을 깨뜨린다. 여기서 댈러웨이 부인의 잃어버린 낙원은 그녀의 독립성과 사사로움(상당히 부르조아적 가치들인)으로 부호화하여, 그녀의 현재, 런던에서 실현 가능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독립성과 사사로움이라는 가치는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를 밀접하게 연결하는 끈이 된다.


작품에서 가장 현저하게 한 인간의 독립성과 사사로움을 침하는 등장인물은 샙티머스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이다. 홈즈 의사는 셉티머스의 병의 원인을 자기만의 상념에 너무 깊이 빠져 그를 둘러싼 바깥 세계를 전혀 인식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셉티머스는 바깥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아내 레지아는 셉티머스에게 자신의 중요한 생각을 방해하는 중단자일 뿐이다. 홈즈와 브래드쇼의 치료법은 각각의 다른 문화를 가진 여러 약소국을 힘이 더 세다는 이유로 그들 고유의 문화를 짓밟고 자신의 문화를 강요하는 대영제국의 제국주의적 방법을 표현 한 것이다. 이는 그녀 스스로의 일기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상강히 날카로운 사회비평을 하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국부적으로 홈즈나 브래드쇼같은 개인들 혹은 그들이 대표하는 영국 지도층의 속물근성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감히 그녀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은 제국주의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가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그녀가 파티를 통하여 애써 지키료는 삶의 비젼을 온통 뿌리채 뒤흔들어 놓는다. 작품속에서 그녀를 항상 걱정시티는 중단자들은 피터, 킬만양, 브래드쇼같은 사람들만이 아니다. 완전한 환희의 순간들이 작게는 인산의 작은 불행들로, 궁극적으로는 죽음이 침입해 언제나 중단되리라는 예감이 그녀를 괴롭힌다. 작품이 거의 끝날무렵, 브래드쇼 부부가 댈러웨이 부인의 파이에서 셉티머스의 죽음을 알렸을 때, 댈리웨이 부인의 불길한 예감은 마침내 실현된다. 그녀의 삶 가운데 죽음이 침입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셉티머스처럼 절망하여 죽음을 택하지는 않는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의 죽음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는 그것을 던져버렸다"고 생각하낟. 여기서 그것은 물론 사람을 의미한다. 셉티머스의 죽음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거부의 위대한 몸짓인 것이다. 홈즈나 브래드 쇼같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주조하여 하자, 그는 과감히 삶을 던져버리고 스스로의 영혼의 자유와 사사로움을 지킨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그가 죽음을 통하여 성치하려던 것, 모든 인간간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의미를 창조해 낸 것이다. 반면에 그녀와 샐리, 피터, 그리고 그들의 부르톤은 삶 속에서 타락하고 손상된다.

 

작가소개

버지니아 울프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부군 레오나드 울프와 함께 로가드 출판사를 설립하여 금세기 가장 주목받는 문예활동을 벌이기도 했던 그녀는 194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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