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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8장 요약 정리

북리뷰

by 연우23 2023. 1. 2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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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여성들의 만남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관계의 측면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남성과 여성을 분리시키는 심리학적 구분들이 순수한 관계에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그것의 내재적 동학을 살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연구 대상의 대표성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하지 않는다면, 놀라울 정도로 성찰적인 기록인 하이트 보고서의 한 부분에 기대어 분석을 전개해 보겠다. 하이트의 조사는 ‘진행중인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파악하려고’ 실시된 것이지만, 또한 분석된 기록들 자체가 이러한 진보에 직접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 하이트는 1972년부터 76까지 첫 번째 긴 ‘수필형 설문지’를 배포했으며, 3천 5백명의 미국 여성들의 응답을 기초로 첫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이트의 표현에 따르면 이 연구의 목적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하도록 만들고’, ‘그들이 섹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섹슈얼리티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하이트의 연구 결과(세번째 보고서), 11%의 여성들은 여성하고만 성관계를 맺었으며, 다른 7%의 응답자는 가끔 여성과 관계를 갖는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레즈비언 여성들은 파트너와의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만, 그들 역시 상대방에 대해 확신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전통적 의미’의 결혼이 사라져가고 있긴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중요한 일상적 실험을 행한다는 점에서 개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성애 부부간에 점차 일상사가 되고 있는 일들을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경험해 온 것이다.


순수한 관계: 만남과 헤어짐

 

관계가 깨진다는 것, 곧 헤어진다는 것은 동성애 여성들에게 모진 시련이다. 그들의 관계는 협상된()것이며 동성애자의 자기정체성은 매우 ‘개방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순수한 관계에는 특히 관계에의 헌신과 관련하여 어떤 구조적인 모순이 존재하며, 하이트의 조사에 응답했던 많은 여성들은 이를 인식하고 있다. 관계에 헌신하고 삶을 함께 하기 위해서 여성은 자기 자신을 연인에게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 곧, 그들의 관계가 일정 기간동안 지속되리라는 것을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보장을 해줘야만 하는 것이다. 순수한 관계란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깨질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자신을 남김없이 던져서 헌신한다는 것은, 앞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 하는 것이다.


하이트가 조사한 표본의 4분의 3 정도는 자신들의 사람이 매우 불안정함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여성과의 성관계가 남성과의 성관계보다 더욱 친밀하여 최소한 대등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사랑의 모델이 만들어져야 하며 도한 동성 관계를 통해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자각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 여성이 말했듯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폭발적, 강박적, 비합리적이며, 놀랍고도 격렬하며 환상적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긴 노력, 신뢰, 의사소통, 헌신, 고통, 그리고 즐거움이다.’ 짧게 끝나기 마련인 성적 흥분과, 보다 지속적인 형태로 상대방을 재려하는 것 사이에서 심한 갈등이 나타난다. 레즈비언들 사이에서는 이성간의 관계에서보다 경제적 불평등이 덜하고, 가사노동도 - 때때로 충볼을 빚기도 하지만 - 대체로 분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순수한 관계에서는 서로간의 신뢰가 관계 외적인 것에 의해 지지될 수 없으며, 친밀성에
기반해서 만들어져야만 한다. 신뢰란 상대방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이며 또한 상호간의 유대로서 앞으로의 상처를 견디어낼 능력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히 선의의 믿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며, 그 자체가 문제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진실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동할 수 잇는 그 사람의 능력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성관계가 두 사람 간의 관계로 나타나는 경향 -이것은 일부일처제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은, 아마 어느 정도는 젖먹이 어린아이가 엄마에 해 느끼는 배타적인 느낌을 반복하여는 무의식적인 욕망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느끼는 ‘특별함’이란 이런 의미에서 ‘재발견’이다. 신뢰란, 적어도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는, 무한히 확장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친밀성이란 감정과 행동을 폐쇄함으로써 광범위한 대중의 시선 앞에는 잘 드러나지 않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감춘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이끌어내고 또한 역으로 신뢰를 보내고자 하는 심성의 중요한 심리학적 특성이다. 친밀성은 자기-폐쇄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것이 개인의 자율성을 유지하지 않은 채 일어
날 경우 공의존에 빠져 들 수도 있음은 뻔한 이치이다. 신뢰란 무한히 확장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관계들 중에서도 무엇이 더 우선적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친구들도 연인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친밀성이 확인되기를 바라며 그들만이 나누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기를 바란다. 자기정체성의 유동적인 속성도 순수한 관계가 요구하는 바와 쉽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신뢰는 상대방이 다라가야 하는 다른 궤적들에 어느 정도는 자신을 적응시켜야만 한다. 신뢰 속에는 항상 허락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다른 기회를 포기하고 그를 주목한다거나, 또는 그들의 활동이 정해진 틀 속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자율성은 관계를 맺고 있는 파트너의 욕구를 반드
시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따로따로 성장하는’ 법이다. 또한더욱 미묘한 영향력이 개입할 수도 있다.


레즈비어니즘과 남성 섹슈얼리티


하이트 조사에 응답했던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적 관심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분명하게 나타내었다. 계속해서 이성애 관계를 하는 여성의 경우에도 말이다. 하이트의 연구결과는 샬로트 월프나 다른 연구의 결론과 유사한데, 양성애적여성은 남성과 결혼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형적 섹슈얼리티가 충분히 전개된다면 페니스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레즈비언 여성들은 일부일처제가 여성에게는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을 부숴버렸다. 많은 여성들은 자기나 파트너나, 최소한 처음에 서로에게 강한 육체적 매력을 느기는 시기가 지나고 나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이성애 여성들은 다른 사람과의 정사를 자기 파트너에게 숨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동성애자의 경우에는 파트너가 이미 알고 또 묵인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거나 도는 사전에 몰랐더라도 곧 눈치채게 되는 것이 전형적인 경우이다. 이성애 관계와는 달리 여성과 여성 사이에는 아주 고도의 의사소통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부일처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때로는 터놓고 토론하기도 하며, 이들 사이의 일부일처제는 전통적인 결혼 규범의 잔재라기보다는 합의에 의해 도출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소수의 여성들은 남성과의 만남에서 가능한 것과 같은 우발적인 섹스를 원하기도 하지만, 여성간의 성관계에서 이것은 드물게 나타난다.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 남성과 성관계를 지속한 여성도 있다. 레즈비언 여성에 대한 기록의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성적 쾌락을 강렬하게 추구한다는 점이다. 관계의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성적 만족을 추구한다. 레즈비언 섹스는 이성애적 성행위보다 성공적인 것 처럼 나타난다. 게다가 훨씬 평등한 상태에서 성적 경험을 주고 받는다. 이 여성들은, 여성의 신체가 오직 성기 감각을 희생해서만 에로틱해 질 수 있다는 생각들이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 둘 (즉, 여성 신체가 에로틱해 지는 것과, 성기의 감각)은 사실은 함께 가는 것이며,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영향 속에서 완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있는 것이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동성애 관계에서는 섹슈얼리티가 재생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다. 동성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거의 전적으로 순수한 관계의 의미가 어떻게 인식되느냐와 연관되어 조직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적 반응의 조형성은 무엇보다도 즐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참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견해와 파트너의 기호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관계(남성 게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에서는 순수한 관계 안에서 ‘금지된’ 태도나 기질들이 다른 방식으로 행동에 옮겨질 가능성이 있는데, 가령 도구적 통제나 공식적 권력의 행사로 나타날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 지배()가 외부로부터 결정되는 것과는 달리동성애 관계에서는 이것이 섹슈얼리티의 영역에 국한되고 도한 환상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다른 경우라면 공격적이라고 느낄 만한 것이 중화되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드 사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재생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며 그것이 팔루스에 종속된 상태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것을 환영한다.


동성애와 에피소드적 만남


여성들간의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는 일부 레즈비언 틀럽이나 바의 문화에서 가장 발달되었다. 단기적이고 비인격적인 간통이 레즈비언 관계에 존재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남성 동성애자들이 한 사람과 오랫동안 성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여성 동성애와 남성 동성애 간의 대비점을 과대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게이 남성들 사이의 에피소
드적 섹슈얼리티는 레즈비언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많고 격렬하다. 남성의 양성애는 오늘날 남성의 성 행태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성적 지향의 ‘정통적’ 형태 중 하나가 되었다. 이성애를 하면서도 규칙적으로 일시적인 동성애를 하는 남성의 비율은 에이즈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이런 식의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는 분명히 방어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남성들은 섹슈얼리티와 자기정체성, 그리고 친밀성을 연결짓는 관계로부터 완전히 이탈해 버렸다고 볼 수도 있다.그렇지만 에치소드적 섹슈얼리티로의 지향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잘못이다. 레즈비언과 마찬가지로 게이 남성들도 결혼과 일부일처제가 전통적인 방식과 마찬가지로 게이 남성들도 결혼과 일부일처제가 전통적인 방식의 이성간 결합으로 함께 통합되는 것을 문제시한다. 일주일처제를 제도회된 결혼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이중기준과 연결되어 있으며 다라서 가부장제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조형적 섹슈얼리티와 순수한 관계의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는, 혼신과 신뢰라는 맥락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다’. 일부일처제란 관계 자체가 아니라 신뢰의 기준이 되는 성적 배타성에 준거하는 것이다. ‘성적 정숙함’은 상대방을 신뢰할때 전제되는 정직성의 측면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랫동안 차별적 권력에 굴복해 온 섹스는 이제 그 권력으로부터 벗어났다. 게이들의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는, 대부분의 이성 관계, 심지어 일시적인 이성관계에서조차 찾아볼 수없는 평등을 표출하고 있다.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의 본성으로 인해 권력은 성적 실행 그자체의 형태로만 나타날 수 있으며, 성적 취향은 유일한 결정인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강압적 성격을 갖지 않는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쾌락이자 만족인 것이다.


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는 일반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려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친밀성을 진전시키거나 가다듬기 위한 방책들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성적 배타성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헌신을 지켜나가도 또 정직함을 성취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에피소드적 섹슈얼리티는 팔루스의 규칙에 핵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새롭게 대두하는 순수한 관계의 규범들과 내적으로 부합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남성과 여성: 함께 혹은 따로?


평등화는 친밀성 영역의 구조변동에서 본질적인 요인이며 또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오늘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많은 부분이 가정이나 직장, 그밖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자기 주장에 대한 반응이다. 여성의 경우는 역으로, 그들이 주장했던 경제적 기본권을 남성들이 미묘하게 혹은 드러내놓고 거부하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분노하고 있다. 바바라 에렌라이리에 따르면, 남성들은 여성들보다도 먼저 기존의 성 역할에 대한 반란을 시작했다. 삼사십 년 전만 해도 남성들은 결혼해서 아내를 부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 이르러 남성들은 결혼생활에 빠져서 경제적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경
제적 성공을 지행하게 되었지만 더 이상 누군가를 대표해서 일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신념을갖지는 않는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독신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아내 또는 가족이라는 사회적인 부담 없이, 자기 노동의 과실()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우월한 경제적인 이점들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생계책임자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성성의 가면은 벗겨지고 그와 동시에 남성드은 장기적인 가정일에 신경을 쓰는 대신, 자신이 즐기는 일에 집중할 수 있데 되었다. 무책임함, 자기탐닉, 그리고 타인의 주장을 아랑곳하지 않는 고립주의를 승인해 주는 사회적 풍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여성들은 여성들에게는 요원하지만, 이제 여성들은 남성이 내던진 책임가지 떠맡게 되었다.


양성의 분리


에렌라이히는 일차적으로 경제적인 성격의 처방을 제시한다. 에렌라이히는 여성들이 점차로 남성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한다. 여성들의 삶 속에서 남성들은 일시적으로 머물렀다 떠나갈 것이며 결국 여성이 가족의 기반으
로 남아 있데 될 것이다. 골드버그의 평가는 무엇보다도 자기 정체성에 초점을 둔다. 남성들은 남성성을 다시 정의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내적 경험으로부터 분리시켜왔던 외부의 영향력들을 극복할 것이다. 여성들이 주고 받는 것과 비슷하게 서로를 도와주고 북돋워주기 위해서는 다른 남성과 친밀한 우정을 맺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남성들은, 그들이 관계하는 여성들이 수동적이며 떠받들어줘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 소개

앤소니 기든스

 

현대사회학계의 세계적 석학으로 영국의 대표적 사회학자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유럽 지성의 쌍벽을 이루며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 지지와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거장이다. 특히 사회 이론 분야에서 유럽의 지적 전통과 현대적 흐름을 반영한 ‘사회 구조화 이론’으로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는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사회 발전 모델을 주창하였다. 이 ‘제3의 길’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등 유럽을 이끄는 중도좌파 정치가들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기든스는 고전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검토하는 작업부터 현대성에 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 이론가로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 이론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회학 입문서인 《현대사회학》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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